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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소방학

우리나라 소방의 역사 (조선시대까지)

by 잼잼있나요 2022.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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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소방 역사에대해 알아보자.
우선 조선시대까지 간략하게 훑어볼 것이다.
추가되는 내용이 있다면 계속 수정하겠다.


목차

1. 삼국시대

2. 통일신라시대

3. 고려시대

4. 조선시대


1. 삼국시대

병란 등으로 주민들이 인접하여 도성이나 읍성을 짓게 되었고 특히, 신라의 제26대 국왕 진평왕이 직접 화재현장의 이재민을 위문, 구제함을 보아 화재가 사회적재앙으로 등장하게 된 시기이다.
이때 화재의 진압은 도성은 성민들과 군사들이 협동해서, 지방은 부족적 성격에의해 부락단위로 진압하였다.

2. 통일신라시대

헌강왕 때를 보면 지붕을 풀로 덮지 않게 하고 기와로 덮었으며, 밥을 지을 때 불꽃연소하는 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무염연소하는 숯을 사용함으로써 화재예방에 힘썼다.
또한, 문무왕 때 경주에 세 번의 화재가 발생하였으나 별도의 소방조직이 없었으므로 백성 및 군대가 힘을 합해 화재를 진압하였다. 삼국시대와 마찬가지로 백성들과 군사들이 소방활동을 하였다.

3. 고려시대


병란이 잦으며 인구가 증가되면서 삼국시대와 통일 신리 시대보다 화재가 많이 발생했다.
특히 이 시대에는 병화와 왜구의 방화, 약탈이 심하여 각 궁전과 창고의 대형 화재가 많았다. 이때 역시  별도의 소방을 담당하는 조직은 없었으나, 금화 제도라는 것은 시행되었다.
화재 예방을 위해 창고시설을 지하 창고로 하였으며, 큰 창고에 소방(당시 금화)를 담당하는 관리를 배치히고, 지붕을 기와로 바꾸도록 권장하였다. 또 화약 제조 및 사용량이 높아져 이에 대응하기 위해 화통도감을 만들어 따로 관리하고, 이때 소방을 소재라 명칭하였다.

4.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수공업의 급속한 성장과 상업도시로 발달하며 전국 각지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였으며, 병
란 및 민란 등으로 궁궐 화재도 극심했다.

이를 해결하기위해 화재예방에관한 기본 법인 금화 법령이 제정 되었고 금화도감이 설치되기 전인 세종 5년에 병조에서 궁중 화재에 대비하여 금화조건을 만들어 시행하였다.금화 조직이 설치되었다. 금화 법령은 경국대전의 편찬으로 골격을 갖추었고, 금화 조직인 금화도감은 1426년 세종 8년 2월 병조에 설치하였다.
얼마 후 1426년 6월에는 성을 지키는성문도감과 금화도감을 합쳐 수성금화도감을 만들었다. 그 후 수
성은 공조로, 금화는 한성부로 시무가 이관되었다.

금화도감에서는 화재를 예방하기위해 도성내에서 통행금지 시간을 정하고 병조에서 당직자 6명을 배정하고 순찰(구화패 발급)을 하였으며, 궁궐 내부는 수시로, 도성 밖은 밤 10시부터 성을 지키는 병사로 하여금 순찰하게 했다.

궁중뿐만 아니라 관가, 민가를 보호하기 위한 금화군, 멸화군, 지방 의용 조직을 만들어 활동
했으며, 대형 화재가 인근으로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시계획의 개념이 도입, 시행되었다.

각 고을마다 5개의 가구를 하나로 묶어 화재발생 예방을위한 5가 작통법 제도를 시행하였다.
이 5가 작통법은 5가를 1통으로 만들고 모두 물통을 준비하였다가 화재 시 진압하도록 하였으며,
세종 13년에는 각 통에 소방종사자 증표인 금화패 1개씩을 주었다.

지방에는 도둑과 화재를 막기 위해 자발적으로 순찰을 도는 의용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였다. 지금의 의용소방대와 비슷한역할을 하였다.
사다리, 도끼, 저수 용기, 물 양동이, 흡수구 등 다양한 화재 진화도구를 만들어 시용했으며, 경종 때에는 대
나무로 만든 수총기를 사용하였다.

TMI) 역사상 최초의 공식적 소방조직은 로마제국 시저 황제 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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